엘더스크롤과 태고 두루마리, 그리고 톨킨 번역지침
Written by Nujabes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차치하더라도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중간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선과 악의 대전쟁, 입체적이고 다양한 등장인물, 마지막으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번역 문제까지.
<성큼걸이, 아라고른 2세> |
‘성큼걸이’라는 등장인물이 있다. 원문은 ‘Strider’, 달음박질하다, 성큼성큼 걷다라는 뜻의 동사 Stride를 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두네다인의 혈통을 가지고 황무지와 협곡을 주파하는 순찰자로서, 그 정체는 바로 진정한 인간의 왕, 아라고른이다. ‘성큼걸이’라는 단어를 처음 읽었을 때, 필자는 그 말이 주는 울림과 명쾌한 의미, 그리고 그것을 모두 잡아낸 번역자들의 노고에 감탄하고야 말았다.
국내 반지의 제왕 판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판본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낸 것과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판이리라. 전자가 보다 규모가 큰 출판사이고, 아무래도 판타지 및 SF 장르를 중점으로 출판하다 보니 더욱 대중적이고 많은 독자에게 친숙하겠지만 필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판본은 단연 후자다. ‘톨킨 번역지침’을 충실히 따라 옛 순우리말을 적극 활용하면서도 그 뜻을 미려하게 담아냈으니 말이다. 물론 논란도 존재한다. 고유명사의 번역을 놓고 벌어지는 논쟁이 그렇다. 반지 운반자였으며 끝내 자신의 의지만으로 반지를 포기한 빌보 배긴스를 ‘골목쟁이네 빌보’로, 요정들의 고향이자 아름다운 은둔처인 리븐델을 ‘깊은골’로 번역한 것이 과연 맞느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맞다. 설정상 반지의 제왕은 빌보 배긴스가 썼고 프로도 배긴스가 완성한 ‘붉은 책’을 톨킨 옹이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였던 톨킨은 심지어 ‘반지의 제왕 번역 지침’까지 작성했으며,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는 이를 충실하게 따랐다. 빌보 배긴스의 경우 ‘원문’ 이름은 ‘빌바 라빙기’로, 톨킨은 능청스럽게 이를 영국인에게 익숙한 이름으로 ‘로컬라이징’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고유명사, 심지어 이름마저도 각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걸맞게 바꾸는 것이야말로 톨킨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번역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게임 로컬라이제이션에서 톨킨의 언어학적 집념이 모두 적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난 포스트에서 파이어볼과 화염구를 놓고 이야기한 바 있듯, 이는 복잡한 문제이다. ‘둠’ 시리즈를 ‘파멸전사’로 번역한 중국어는 뭐, 본디 표의문자라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얼마든지 음차가 가능한 한국어에서 올해 발매된 ‘둠 이터널’을 ‘영원한 파멸’로 바꾸는 것은 어딘가 어색하기도 하고, 시리즈의 오랜 역사와 상표도 무시하는 일일 것이다(물론 이번에 정식으로 로컬라이제이션되면서 ‘아이콘 오브 신’과 같은 몇몇 이름은 ‘죄악의 상징’처럼 적절히 옮겨졌다만).
문체와 용어 번역에 있어 어느 정도의 로컬라이제이션이 적절할까? 번역과 직역, 의역의 경계는 어디일까? 당연히 제1순위는 업체의 지침이다. 그렇기에 업체의 기준에 따른 용어집도 제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식 한글화가 아닌, 유저 한글화의 경우에는?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RPG계의 기준을 새로 세웠던 베데스다의 영원한 명작,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이다.
<물론 이건 일부러 웃기려고 만든 합성이다> |
스카이림은 공식 한글화 없이 국내에 발매되었고, 방대한 세계와 대사량을 번역한 것은 바로 유저들이었다. 여러 한글화 패치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첫째는 엘더스크롤7 카페에서 제작한 음차 중심의 패치가 있고, 둘째는 ‘말미르’라는 이름을 가진 개인 회원이 제작한 ‘말미르 패치’가 있다. 개인적으로 품질 면에서는 검수 과정을 거친 후자가 더 우수하다고 보나, 그럼에도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중 하나는 작중 등장하는 고유 명사를 모두 임의로 ‘Transcreate’했다는 것이다(단순 번역을 넘어 옮겨-재창조). 예컨대 제목에서부터 등장하고, 시리즈의 핵심 유물인 ‘엘더 스크롤’을 ‘태고 두루마리’로 번역하거나, RPG의 단골 손님 언데드를 ‘산송장’, 흡혈귀에 맞서는 단체 던가드를 ‘여명수비대’로 번역하는 식으로 말이다(외국 웹에서 정보 찾기가 어렵다는 것도 한몫했다). 작중 모든 등장인물의 말투를 ‘하오’체로 번역한 것도 어색하다는 점에서 꽤 많은 비판을 낳았다.
재차 말하듯 정답은 업체의 의견에 달려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필자는 이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본다. 옮길 수 있는 것을 옮기지 않고 음역하는 것은 일종의 나태함이 아닐까 싶다. 최근 이러한 바람이 두드러지는데, ‘어벤져스’야 프랜차이즈가 확고하니 그렇다 하더라도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8년 국내 개봉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이라는 굳이 음차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제목까지 음차하는 것 말이다.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지만 부득이한 상황을 제외한 부분만이라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최대한 우리말의 정서와 문화에 어울리는 말을 찾아 옮기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로컬라이제이션이 아닐까. 톨킨 수준의 충실하고 철저한 지침이 제공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옮길 수 있는 일상적인 용어만이라도 말의 뿌리를 찾아 의미를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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