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에게 좋은 운동 – 국궁
Written by 한국조르바
안녕하세요? 한국조르바입니다.
오늘 포스팅 주제는 많은 분께 생소한 국궁입니다. 워낙 광범위한 주제이다 보니 포스팅 한 번에 국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을 수는 없고 국궁에 입문하고 싶은
분이나 국궁에 대해 전혀 모르는 분에게 소개해드리고 싶은 내용만 몇 가지 추려볼 생각입니다. 온종일
책상에 앉아 일하고 계신 번역가님이 이 글을 보신다면, 한번 눈여겨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궁이란?
국궁은 최근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된 전통 활쏘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예로부터 동쪽의 활 잘 쏘는 민족(동이족, 東夷族)이라 불릴
정도로 활을 잘 다뤘습니다. 모든 국민이 활을 다루는 데 있어서만큼은 좋은 DNA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의 양궁 궁사들이 전 세계를
제패하는 것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하 국궁이라는 용어와 활쏘기라는 용어가 혼재되어
있는데 같은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실제로 국궁계에서는 국궁이라는 용어를 궁도, 궁술, 활쏘기와 혼용하고 있고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과
의미를 살려 ‘활쏘기’로 통일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실제로 궁도라는 표현은 일제강점기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의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말이라는 것이 여러 고증을
통해 확인되고 있습니다.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개정증보판), 학민사, 2013, 15쪽)
양궁과 뭐가 다를까?
국궁이 양궁과 다른 점은 대표적으로 활의 종류, 사대와 과녁의 거리, 점수 계산법,
사법 등이 있습니다.
양궁의 활은 카본 소재를 사용하여 제작하고 정교한 조준기가 달린 반면, 국궁의 활(각궁)은 대나무를
비롯한 나무와 물소 뿔 등의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제작하고 조준기 없이 화살촉이나 줌손(활을 쥔 손)의 어느 특정 부분을 겨냥하는 데 이용합니다. 물론, 현대의 국궁계에서도 카본 소재를 이용해 만든 개량궁이 있으나 이는 각궁을 본떠 만든 것일 뿐, 양궁의 활과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양궁은 30m, 50m, 70m,
90m 거리에서 각각 경기를 진행하지만, 국궁은 145m
고정 거리에서 경기를 진행합니다. 또한, 양궁은
화살이 과녁의 중앙에 근접하여 명중할수록 점수가 높아지는 방식이지만, 국궁은 가로 2m, 세로 2.67m의 과녁 내 어느 곳을 맞혀도 관중(貫中)이라 하여 명중한 것으로 기록하고 한 발이 명중할 때마다 1점씩 점수를 부여합니다.
국궁 사대에서 과녁까지 145m
활을 쏘는 방식인 사법에서도 양궁과 국궁은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활의 어느 부분에 화살을 걸어 쏘느냐 하는 방식에서 우 궁사를 기준으로 활채의 오른쪽에 화살을 거는 몽골리안
사법과 왼쪽에 화살을 거는 지중해식 사법,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국궁은 몽골리안 사법을 차용하고 양궁은 지중해식 사법을 씁니다. 몽골리안 사법을 쓰는 활을
쏘기 위해서는 활채와 화살이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이런 차이점 때문에 활에
걸린 줄을 일컫는 시위(또는 현)를 잡는 방식에서도 양궁은
화살에 영향을 주지 않아도 되는 특성 때문에 시위만 편하게 당길 수 있도록 검지, 중지, 약지를 이용하고, 국궁은 검지로 화살을 활채에 붙이는 힘을 가할
수 있도록 엄지를 이용하는데, 엄지를 보호하고 시위를 더 매끄럽게 벗겨내기 위해 깍지라는 보조 기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양궁은 시위를 입술에 닿을 때까지만 당기지만, 국궁은
시위를 귀밑까지 당깁니다. 양궁에서 활채의 왼쪽에 화살을 걸고 얼굴의 오른쪽까지 당기게 되면 발시하는
순간 시위의 운동 방향과 얼굴 오른쪽 뺨 및 줌손의 팔뚝이 같은 동선에 있어 두 군데가 시위에 맞을 수 있습니다.
국궁은 시위의 동선이 오른쪽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양궁보다 더 많이 당길 수 있는 것입니다. 국궁의
최대사거리가 340~360m로 200m 정도인 양궁에 비해
긴 것은 바로 이런 차이점에 기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로 가면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국궁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들이 실제로 활터의 문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활쏘기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여유롭고 한가한 중년 이상이 하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젊거나, 금전에 여유가 없거나, 바쁜
분들은 하기 어려운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필자 역시 처음에 활터에 방문했을 때 왠지 모르게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감지하고 발길을 돌리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활터가 자리 잡게되는 과정을
상기해보면 왜 국궁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바뀌었을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활쏘기는 여유롭고 한가한 중년 이상이 하는 운동?
조선 시대에만 하더라도 한복을 두른 여궁사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자유롭게 활을 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에 대한 자료는 여기저기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활쏘기 금지령까지 내려졌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활터가 사라지고, 전쟁 이후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에서는 활쏘기가 점차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활쏘기는 지역 사회의 일부 ‘여유 있고 한가한’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고급문화였을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에서 배타적인 지역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들만의 리그
서론이 길었는데요. 최근 활터의 풍경은 매우 젊어지고 세련되어졌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고 특히 여궁사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모임이든 신구, 음양의 조화가 잘 이뤄져야
균형이 잡히고 건강한 법입니다. 활터는 이제 과거 일부 지역 사회 유지들의 배타적인 모임에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으로 변모하는 중입니다.
가까운 활터에 찾아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활 배우러 왔습니다’라는 인사를 하면 반갑게 맞이해 줄 것입니다.
돈은 얼마나 들까?
아마 이 포스팅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일 것입니다. 항간에서는 국궁을
귀족 스포츠라 부르며 마치 금전적으로 매우 부담이 되는 운동으로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궁이야말로 모든 국민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국민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입니다.
대부분의 활터에서는 가입한 사원으로부터 입정비와 회비를 받습니다. 입정비는
처음 활터에 가입할 때 내는 돈으로 사정마다 다르지만 대략 10만 원에서 100만 원 정도 됩니다. 100만 원이라는 대목에 깜짝 놀라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고종 황제가 활을 냈다는 서울 종로구 인왕산 자락에 있는 황학정(黃鶴亭)만 100만 원이고
나머지 활터는 대부분 10~30만 원 정도에 형성되어 있습니다.
월 회비는 거의 2~3만 원 정도 되며 일부 지자체 직영 시설의 경우
회비를 따로 받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입정비가 100만 원?
입정비와 회비 외에 국궁에서 필요한 비용은 바로 어느 운동에서나 필요한 장비(활, 화살, 깍지 등)입니다. ‘장비 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어느 취미나 마찬가지겠지만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 법’이라고, 차고 넘치는 장비를 갖추는 데 필요한 돈은 사실 그리 많지 않아도 됩니다.
먼저, 활은 개량궁과 각궁으로 나뉘는데 개량궁 가격은 20만 원에서 25만 원 정도입니다.
각궁은 전보다 많이 올라서 70만 원에서 80만
원 정도인데, 활을 제작하는 데 드는 궁장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대한궁도협회 공인 5단 이상의 승단을 하기 위해서는 각궁이
필요한데 4단까지는 개량궁으로도 취득이 가능하므로, 가벼운
취미 정도로 활을 내시는 분들이 굳이 각궁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화살은 개량시 기준 개당 1만 원에서 1만 3천 원 정도(각궁에
쓰는 죽시는 3만 5천 원)입니다. 처음부터 많이 갖출 필요는 없고 두 번 사대에 올라가 쏠 수 있는 정도면 됩니다. 한 번 사대에 서서 활을 낸 후에는 같이 활을 낸 분들과 함께 화살을 줍기 위해 과녁이 있는 무겁에 다녀오게
됩니다. 연전(또는 고전)이라고
해서 과녁에 화살이 명중한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연전을 둔 활터에서는 사원들이
무겁에 가지 않고 연전이 화살을 주워 운시대(화살을 운반하는 장치)에
화살을 실어 보내기도 합니다. 한 번 사대에 서는 것을 ‘한
순’이라고 하는데, 한 순에 5발씩 쏘기 때문에 10개만 있으면 두 순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활을 내는 동안 화살이 손상될 수도 있어 여분으로 2개 정도를
더 구비해 놓는 게 좋으니 총 12개를 한 세트로 사는 것을 추천합니다.
활 한 자루에 80만 원?
활과 화살 외에 사구(射具)라고
해서 활을 쏘는 보조 도구가 필요합니다. 보통 깍지라고 불리는데 나무,
상아, 황동, 은, 기타 단단한 재질의 재료 등을 사용해서 제작합니다. 활쏘기 도구들은
수요자가 많지 않고 개인별 특성이 반영되어야 하므로 시중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따라서, 선배 사원이 제작해주거나 국궁 전국대회가 열릴 때 대회장에서 판매권을 갖고 입점하는 몇몇 판매자들에게서 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가격은 재질에 따라 2만 5천 원에서 10만 원 정도까지 다양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활터마다 ‘장인’이라
불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테니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활터 인심은 넉넉하니 신사(新射)라면 그 정도의 호의는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점이 매력일까?
국궁의 매력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슴을 빠개는데’ 있습니다. 전추태산 후악호미(前推泰山
後握虎尾)란 말이 있습니다. 영화 <최종병기 활>(2011)에도 등장하는 말인데 영화에서는
후악호미가 발여호미(發如虎尾)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추태산의 뜻은 명확한데 후악호미 혹은 발여호미의 뜻은 의견이 분분합니다. 필자가
찾아보고 경험한 바를 토대로 풀이하자면 ‘줌손은 태산을 밀 듯 묵묵히 밀며 깍지 손은 호랑이 꼬리를
떨치듯이 날쌔고 연삽하게 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줌손과
깍지손이 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쌍분의 경지를 이룬 상태에서 힘차게 발시해야만이 명중하는 우리 활쏘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추태산 후악호미(前推泰山 後握虎尾)
이런 집중제원칙(주석 참고)의
하나를 실행에 옮기면 그야말로 ‘가슴이 빠개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활을 당기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전추태산), 가슴에 담긴 호흡을 단전으로 내려보낸 후 발시하면(후악호미),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면서 호흡이 가슴으로 훅 들어옵니다. 모든
동작을 제대로 했다면 화살은 과녁을 향해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힘차게 날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과녁의
어느 부분을 맞으면서 ‘빡’ 하는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발시하기 전에 모든 신체 기관을 죄어 바짝 긴장한 몸은 발시 직후 완전히 이완되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이런 황홀함은 관중과 함께 그 짜릿함이 배가됩니다.
이처럼 국궁은 기본적으로 전신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써 몸을 곧고 유연하게 하는 데 탁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체적 유연성이 정신 건강에 작용하는 힘도 놀랍습니다. 현대인의
질병 대부분은 스트레스에 기인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라 하더라도 탁
트인 자연 속 활터에서 활쏘기를 한번 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스트레스 관리에 탁월한 운동
제가 이 포스팅의 제목을 ‘번역가에게 좋은 운동 - 국궁’이라고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번역가는 그 누구보다도 정신적 스트레스에 굉장히 많이, 그리고 오래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서 모니터를 응시해야만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몸의 유연성은 줄어들고 경직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본인의
일정을 정확하게 관리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번역가는 프로젝트 양상에 따라 일정이 수시로 변경되기 때문에 언제 시간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국궁은 자연을 벗 삼아 할 수 있는 운동 중의 하나인 골프처럼 따로 시간을 잡거나 여러 명을 섭외해야 할 필요
없이 혼자라도 언제든지 시간이 날 때 가서 몇 순 내고 올 수 있는, 접근성이 용이한 운동입니다. 잠시 틈을 내어 혼자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 그러면서도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는 운동이 바로 국궁입니다. 번역가에게 이보다 좋은 운동이 또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치는 글
최근에는 활터에서 여러 새로운 시도를 통해 젊은 층의 유입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국궁 체험 행사 운영, 발광오늬를 활용한 야간 습사(야사), 145m 외에 작은 과녁을 이용한 근거리 습사 등, 한정된 콘텐츠를 다양화하고 흥미 요소를 더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간
경직된 활터 문화가 새로운 사원(신사)의 입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왔는데, 앞으로는 소통이 더 잘 되고 상호 이해와 양보가 자리매김하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활을 배웁시다!
이 글을 읽고 활쏘기에 흥미가 생기신 분이 있으면 아랫글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입문자를 위한 안내 - 국궁신문》
국궁입문-활을 배우시려는 분에게!
《참고 - 집궁제원칙》
1. 선찰지형 후관풍세(先察地形
後觀風勢)
- 먼저 지형을 살피고 뒤에 풍세를 본다.
2. 비정비팔 흉허복실(非丁非八
胸虛腹實)
- 발의 위치는 丁자도 아니고 八자도 아닌 자세로 서고 가슴은 비게
하고 배에 힘을 준다.
3. 전추태산 후악호미(前推泰山
後握虎尾)
- 줌손은 태산을 밀 듯 묵묵히 밀며 깍지 손은 호랑이 꼬리를 떨치듯이
날쌔고 연삽하게 빼야 한다.
4. 발이부중 반구제기(發而不中
反求諸己)
- 쏘아서 맞지 않는 모든 결점은 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에서 발생하는
것이니 나를 한 번 더 되돌아보고 그 결점을 나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참고자료
정진명 『한국의 활쏘기』(개정증보판), 학민사, 2013
http://www.hani.co.kr/arti/sports/sports_general/467010.html
http://www.karchery.org/korean/Comm_all/jeong_list.asp?menu_id=4&sub_id=1&vipptsid=pc
http://www.archerynews.net/news/main.asp
http://www.js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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