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호칭 번역의 어려움에 대해



Written by 어니언후르츠

가족 구조는 매우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부부는 평균 1회 이혼한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로 이혼이 빈번해지고 재혼에 따라 인척 관계가 계속 변하기도 하는 요즘, 가족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이 아무리 변화해도 언어는 이러한 새로운 가족 구조를 수용하기 위해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한국어는 영어보다 훨씬 복잡한 가족 호칭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대입할 수 있는 가족 호칭을 선택하는 데에는 가족관계와 나이에 따른 기준이 있긴 하지만 실상은 더 복잡하기 때문에 가족 호칭 번역을 힘들게 합니다.



우선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 Modern Family에서는 게이 커플이 등장합니다. 극 중에서 카메론과 미첼은 동성 사실혼 관계입니다. 카메론은 미첼의 친부인 제이를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때 이를 그대로 ‘제이’라고 번역할 경우 한국어의 가족 관계에 따른 호칭 체계에 맞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동성 사실혼 관계로부터 파생되는 사돈 관계는 한국어 문화권에서 넓게 수용되지 않는 생소한 관계죠. 결국 일반적인 남녀 사이의 사실혼 관계로 유추해보는 것이 최선이 됩니다. 그렇다면 장인어른, 아버님 등의 호칭이 후보에 오릅니다. 이때, 장인어른이라는 호칭은 미첼을 아내라고 전제해야 가능한 호칭으로 사실혼 관계 당사자 모두 남성이란 점을 고려할 때 성 역할을 내포하지 않는 다른 호칭이 더 적절합니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은 부부 관계 당사자 중 여자 쪽이 남편의 아버지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타인의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으로도 통용되므로 장인어른보다 더 적절한 번역이 되겠죠.

가족관계와 나이라는 기준이 서로 충돌하기도 합니다. Modern Family에서 필은 제이의 사위이며 제이와 재혼한 글로리아는 필보다 나이가 적습니다. 둘은 가족 관계상 장모님과 사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것을 한국어 문화권의 가족관계 호칭체계에 대입시키면 장모님이라는 번역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나이가 어리다는 사실이 장모님이라는 호칭에서 위화감이 느껴지게 됩니다. 젊은 글로리아는 ‘장모님’이 주는 원형적 이미지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 번역물을 보게 되는 사람의 몰입에 방해가 될 수도 있죠.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필과 글로리아가 또래인 점, 한 가족 내의 구성원으로서 허물없이 지내는 점 등을 고려하여 ‘글로리아씨’ 와 같은 번역이 적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네팔에서 쓰이는 언어인 네와르어에서는 어머니의 아버지의 남동생부터 할머니의 남자 형제의 아내, 심지어 애인과 야반도주한 어머니, 아내가 애인과 야반도주한 아버지를 구분하는 용어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세밀하게 분류하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런 호칭 번역에 대한 고민이 사라질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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