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유행어의 사용


Written by Nujabes

한번은 피드백을 살펴보는 중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영국 가수 Iggy Pop이 나오는 부분이 있었는데, 업체 측에서 ‘이기’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혐오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이니 가능하면 다른 말로 바꿀 것을 요청한 것이다. 대체 무슨 소리지, 했는데 알고 보니 어떤 반사회적/반인륜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즐겨 사용하는 말투였던 것이다. 짐작하건대 일종의 블랙리스트가 있어서 QA 과정에서 잡힌 용어를 살펴보지 않고 그냥 전달했던 것 같았다. 뭐, 이거야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사실 게임, 아니 모든 서브컬처 매체의 로컬라이제이션에 있어서 유행어의 사용은 조심스러운 일임이 분명하다(여기서는 게임에 대해서만 다루기로 한다).

유행어나 밈(meme)은 사실 싱글플레이 게임보다는 지속적으로 업데이트와 패치, 이벤트가 진행되는 대규모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사용되고는 한다. 대다수의 싱글플레이 게임은 한정된 플레이 타임을 가지고 있고, 정해진 배경에서 정해진 등장인물들이 정해진 스토리에 따라 진행된다. 여기서 밈이 사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패러디나 유머를 의도한 도전과제 이름 번역이 대다수이다. 시대상과 문화적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2 업적명은 원본과 맥락을 아는 게이머라면 누구나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유쾌하게 번역되어 있다.



스타크래프트2: 자유의 날개 캠페인 업적 중 하나인
‘차가운 토시 남자’와 패러디 원본이 된 네이버 웹툰 ‘마음의 소리’


그렇다면 위와 같이 1회성으로 번역되는 업적명이 아닌, 지속적으로 컨텐츠가 업데이트되며, 1인 방송 시대에 끊임없이 맞추어야 하는 대규모 온라인 게임에는 어떤 사례가 있을까? 같은 게임 제작사의 다른 게임, <하스스톤>에서도 재미있는 예시가 있다. 구독자 규모가 80만명에 달하고, 지상파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유튜버 ‘침착맨’은 하스스톤을 자주 플레이하고는 하는데, 한번은 시청자들의 지나친 훈수에 지쳐 ‘55도발 왜 하냐고’라는 희대의 명클립을 탄생시킨 바 있다. 여러 스트리머와 함께 하스스톤 대회를 활발하게 주최하는 블리자드에서는 이 또한 놓치지 않았다.


’5/5도발 왜 하냐고’ & 5/5 전함 왜 하냐고오


그야말로 유쾌한 차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위에서도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밝힌 바 있듯, 밈과 유행어 사용은 어렵다. 첫째, 수용자가 맥락 또는 원본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래서 저게 뭔데’라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둘째, 밈이나 유행어가 사장되거나 수명을 다한 상황에서 사용해 봤자 미적지근한 반응만을 이끌어낼 것이다. 셋째, 소수의 고립된 커뮤니티 내부에서만 사용되던 용어가 외부로 퍼져 널리 사용될 때, 그 유행어(또는 ‘드립’의 기원을 두는 커뮤니티의 성향이 문제가 되는 경우 크나큰 논란을 낳을 수 있다(리그 오브 레전드의 패치노트가 이로 인해 몇 차례 수정된 경우가 있다).

결국 밈의 사용은 궁긍적으로 유머의 사용과 맥락이 닿아 있다. 조롱과 농담의 경계는 어디인가? 블랙 코미디와 비하의 경계는 어디인가? 표현의 자유는 또 어디까지인가? 깊게 파고들자면 끝이 없지만 몇 가지 대원칙은 존재할 것이다. 1) 유머는 약자에서 강자를 향해야 하며 2) 정치, 종교와 같이 민감한 주제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고 3) 특정한 소수 집단에서만 사용되는 내부적 ‘농담’은 피해야 하고 4) 결코 타인의 아픔을 조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밈은 적절히만 사용한다면 크게 허를 찔러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게임이라는 상품의 판매에 있어 유머라는 무기로 무장한 극도로 효율적인 전략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번역가의 하위 문화 전반과 동시대 유행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할 것이나, 그럼에도 선을 넘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정한 웃음을 주는 것은 또한 번역가와 나아가 마케팅 팀의 책임이자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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