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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에 관해서 – 게임 속 인칭대명사의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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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Nujabes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는 주어의 쓰임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어떤 특징이냐고? 잘 안 쓴다는 것이다.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굉장히 모호한 기준이기는 하지만)에서는 주어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의무교육 과정에서 1형식, 2형식이니 외웠던 것을 떠올려 보자. S, 즉 주어는 결코 빠지지 않는다. 반면 한국어에서는 주어를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한 권장된다. ‘사랑해, 밥 먹었니’와 같은 일상에서도 자주 쓸법한 문장들을 떠올려 보자. 영어로 옮기면 각각 ‘I love you, Did you eat’이 된다. 법전이나 계약서와 같이 행동의 주체를 명시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한국어 화자는 굳이 문장의 주인이 누구인지, 듣는 이가 누구인지 나타나 있지 않아도 동사의 쓰임이나 문맥에서 파악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번역에서는 You를 마케팅이든 IT든 상관없이 피하는 경우가 잦다. ‘너는 너의 개를 산책시킨 뒤 너의 집으로 돌아가 네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어.’ 끔찍한 문장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주어는 어느 때고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신을 괴롭힌다. 블로그의 주제에 맞게 게임을 예로 들어 보자. 일지에서 플레이어는 지난 여정을 돌이켜 본다. ‘사악한 고블린 무리를 무찔렀다. 토벌대의 대장 아무개는 왕국의 증표를 건네며, 증표를 서쪽의 주술사에게 가져가라 했다. 서둘러 높새바람 탑으로 떠나야 한다.’ 흔한 문장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이를 영어로 옮긴다고 했을 때 화자를, 주어를 누구로 설정해야 하느냐가 문제가 된다. I must? You must? 1) 나 게임을 왜 하는가? 많은 답이 있겠지만, 다른 모든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게임은 새로운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그곳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인물로 다시 태어나 지금껏 접해 본 적 없는 세상을 탐험하고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이때 가장 적합한 인칭은 무엇일까? 필자는 단연코 1인칭이라고 생각한다. 힘겨운 싸움을 끝내고, 멋진 경치를

선택과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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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Nujabes 8~90년대에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소위 ‘게임북’ 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게임북이 무엇이냐, 바로 어떤 스토리를 중심으로 독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어 선택에 따라 ‘XX페이지로 가시오’와 같은 지령을 줘서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도착하도록 유도하는, 뭐 원시적인 오락물이었다. 이것이 디지털화된 것이 바로 어드벤처 게임이다. 초창기에는 메모리와 코딩 등, 기술적인 제한으로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대략 2010년대 초반부터 게임북은 새로운 모습과 개념으로 재탄생한다. 바로 ‘선택과 결과’라는 트렌드로 말이다. 말 그대로, 게임을 진행하며 플레이어가 내린 선택이 게임의 줄거리와 플레이, 마침내 결과에까지 반영된다는 것이다. ‘ 텔테일 게임즈’(Telltale Games) 가 이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비록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는 일종의 조롱에 가까운 밈으로만 남았지만 말이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Obsidian Entertainment) 는 역사적인 RPG 게임, 폴아웃: 뉴 베가스(Fallout: New Vegas) 로 플레이어의 선택이 어떻게 세계를 바꿔 놓을 수 있는지를 증명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상호작용과 대사로 완벽한 세상을 묘사해냈다. 라리안 스튜디오(Larian Studio) 의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Divinity: Original Sin 2) 는 주인공의 선택을 도덕적 딜레마와 접목시키고, 서로 반목하는 이해 관계를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에 맞게 새롭게 재해석된 아이소메트릭 RPG로 빚어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게임이 일종의 극의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했으나 모든 게임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겉핥기 식으로만 대충 넣어 둔 게임도 있었고(겟 이븐; Get even) 야심찬 시도에 비해 용두사미로 빠진 게임도 있었다(티러니; Tyranny).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았든 간에, 이 선택과 결과를 로컬라이제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