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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의 역사 2 – 허버트 채프먼과 첫 전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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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ritten by  mediumsung 1925년 전까지 아스날은 우승과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팀이었으나 1925년 아스날의 전설적인 감독 허버트 채프먼이 부임하면서 잉글랜드의 강팀이 된다. 1921년에 허더즈필즈 감독으로 취임해 1922년 FA컵 우승, 1923년부터 1925년까지 2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거둔 허버트 채프먼은 “이 클럽을 세계 최고의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취임사와 함께 아스날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다.   채프먼의 아스날은 축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혁신적인 팀으로 평가받는다. 공을 가진 선수가 상대 진영에 있는 공보다 앞서 있는 플레이에 관여한 공격자에게 패스하는 순간, 공을 받을 선수 앞에 상대 선수가 2명 미만으로 있으면 오프사이드가 선언된다는 현재의 오프사이드 룰과 달리 1925년 전까지는 상대 선수가 3명 미만일 경우 오프사이드가 선언됐기 때문에 오프사이드 룰은 공격자에게 더욱 불리했고 대부분의 팀이 수비를 두 명 이상 두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수비수 두 명으로 오프사이드 트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팀이 늘어나 득점률이 감소했고 골이 나오지 않아 재미없는 경기가 많아지자 관중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에 위기를 느낀 협회는 오프사이드 규정을 변경해 관중이 증가하나 감독들은 새로운 수비 전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때 허버트 채프먼은 축구 역사상 최초로 수비수 세 명을 기용하는 WM 전술을 고안해내는데 이 전술은 1950년대까지 가장 보편적인 포메이션이 된다. 허버트 채프먼은 선수들의 식습관과 몸상태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팀 최초로 물리치료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채프먼의 혁신적인 전술, 훈련 방식과 더불어 알렉스 제임스, 테드 드레이크, 클리프 바스틴 등 뛰어난 멤버들에 힘입어 아스날은 1929/30 시즌에 FA컵 트로피를 거머쥐고 1930/31, 1932/33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 그러나 허버트 채프먼은 1933/34 시즌 도중 급성 폐렴으로 갑작스레 사망한다. 채프먼의 부재에도 아스날은 1933/34시즌

아스날(Arsenal)의 역사 – 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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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mediumsung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빅 클럽 아스날은 런던 남동부에 있는 울위치의 왕립 무기고(Royal Arsenal, 로열 아스날)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것으로 1886년에 다이얼 스퀘어(Dial Square)라는 이름으로 창단됐다. 1893년에는 클럽의 이름을 울위치 아스날(Woolwich Arsenal)로 변경한 뒤 풋볼 리그에 참가한다.  울위치 아스날의 연고지였던 울위치 지역은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어 관중 수익이 나지 않았다.  현재도 입장권 수익이 구단 수입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20세기 초는 입장권 수익 구단 수입의 거의 전부였기에 울위치 아스날은 파산을 피하고자 연고 이전을 선택한다. 아스날은 연고지를 남부 울위치의 매너 그라운드에서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옮겼다. 이사한 아스날 홈 스타디움은 당시 미들섹스에 위치한 토트넘의 화이트 레인에서 불과 4마일(약 6.4km) 정도 떨어진 장소이다. 그리고 이듬해 울위치를 빼 버리고 현재의 아스날 FC로 구단 명을 변경했다. 아스널이 하이버리로 이전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14년부터 1918년까지의 기간은 세계적으로는 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잉글랜드의 축구 역사 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이다.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잉글랜드 풋볼리그가 중단됐던 1915년에는 맨유와 리버풀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고, 4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1919년 리그가 재개되기 직전에는 노리스 구단주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아스널과 토트넘이 연루된 또 하나의 커다란 스캔들이 터진다. 1914/15시즌, 1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첼시(19위)와 토트넘(20위)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 리그가 속개되면서 리그 측에서 참가팀을 20팀에서 22개팀으로 늘렸기 때문에, 두 팀은 그대로 1부리그에 남고 2부 리그에서 2팀이 승격하는 것이 상식적인 처사였다. 바로 그런 상황속에서 같은 시즌 2부 리그 5위를 기록해 정상적인 승격이 어려웠던 아스널의 노리스 구단주는 비